1...깐차나 부리 트래킹 일일투어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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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까지 지정된 장소에서 픽업하여 깐차나 부리에서 점심과 죽음의 열차 ..코끼리...뗏목 타시고....싸이욕 폭포 가서 구경 하시고...

다시 방콕으로 돌아 오시면 저녁 7시 전후 도착 합니다...(점심 포함)

1인당...650 밧 (19,500 원) 입니다...(투어중에 추가 요금 전혀 없습니다...기차비까지 모두 포함 했습니다....)

이때 주의 하실점은 ...

전쟁 박물관 구경 하라고 하는데 하지 마세요...

볼건 없고 입장료만 날립니다..

.(전쟁 박물관 입장료는 불 포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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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짜나부리는 방콕에서 서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주인데,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볼거리, 공원과 폭포등이 유명해서

태국인들도 휴일에 가장 즐겨찾는 곳중 하나란다.

방콕에서 깐짜나부리행 버스로 두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나처럼 하루에 이곳을 둘러보고싶은 사람은 일일트래킹이 낫다.

오전 7시에 카오산을 출발하여 오후7시에 도착하는 이 상품은 650바트.

이 가격에 전쟁 박물관, 연합군 묘지, 콰이강의 다리, 죽음의 철도 기차 타기, 사이욕 노이 폭포, 코끼리 트랙킹, 뱀부 뗏목 타기 등이 포함되어있고

물론 영어가이드가 따라 붙는다.

꽤나 괜찮은 가격에 괜찮은 프로그램이다.

시간이 있는 학생들은 보통 이곳에가서 이박 삼일정도 묵는듯...

오전 7시, 숙소에서 뚝뚝을 타고 카오산 동대문으로 가니 깐짜나부리 억양도 특이하게 노래하듯 가는 사람을 줏어모으고 있더라.

다시 카오산로드 중심에 가서 일행을 모아 방콕을 떠났다.

일행은 서양사람 6, 한국사람 4 도합 열명. 난 혼자다니는 깍뚜기라 운전수 옆자리 차지.

카오산 탁밧하고 드가시는 스님.

연합군 묘지. 일본에 의해 포로로 잡혀있던 연합군들이 콰이강의 다리를 만들거나 철로를 만들다가 죽어간 자리.

콰이강의 다리라는 영화보셨지? 그거 떠올리면 됨.

깐짜나부리 시내 ‘콰이강의 다리’ 옆 제스(JEATH) 전쟁박물관은 전쟁의 교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포로수용소를 보수해

34년 전에 박물관을 설립했다고 한다. 콰이강의 다리와 관계있는 나라들(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타이, 네덜란드) 첫 머리글자를 따

‘JEATH’란 이름을 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타이와 미얀마를 잇는, 일명 ‘죽음의 철도’ 건설에 동원돼 숨진 연합군 포로 2만명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 지금은 잊혀졌지만 당시 일본군에 강제징용을 당했던 조선인 군속들의 한 또한 묻혀 있다.

하지만 전시물 어디서도 조선인 군속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영어를 잘한 탓에 특별징용돼 연합군을 직접 상대했던 조선인 군속들.

1944년 연합군 폭격으로 다리 일부가 폭파된 뒤 현재 모습으로 복원된 콰이강의 다리. 영화 〈콰이강의 다리〉 무대로 잘 알려져 있는 곳.

콰이강의 다리는 인도네시아에서 뜯어온 철교를 그대로 사용했다.

영화 속에서 연합군 폭격으로 무너진 곳이 바로 아치형 철교가 아닌 네모난 부분이다. 매년 11월 마지막주가 되면, 영화 폭격 장면을 재연하는 빛과 소리축제가 다리 위에서 열린다고 한다.

콰이강의 다리

하루 세번 이 다리를 지나는 기차.

다시 길을 나서 콰이강의 뱀부뗏목타기.

다시 길을 나서 사이욕노이 폭포로 향했다.

에라완국립공원 근처에 있는 작은 폭포유원지.

왕비생일 연휴라 현지 인파가 넘쳐남.

인자 또 코끼리타러가기. 만고 땡이다..

실어다 주지.

돈 더 안내도 코끼리도 태워주지...ㅋㅋㅋ

코끼리 뒷목털이 행운을 갖고 온다드만..

차마 못뽑았다.. ㅋㅋㅋ

마지막으로 죽음의 열차 타기.

진짜 죽음의 열차였다. 만원에 근 한시간 30분을 서서갈라니..

냉방장치라곤 선풍기와 창문여는것이 전부.

자리양보해준 애옴마.ㅋㅋ

나는 칼라펜 하나 드리고.

어찌나 피곤하던지..

삭신이 쑤셔 피로를 풀러 수영장 갔다가..

무서워서 기냥 들어옴

콰이강의 다리위에 서있는 한국인의 슬픔

(2차세계대전당시 일본군의 징용으로 끌려한 한국청년들이 이 철로공사장의 연합군포로의 보초병으로 끌려가 일본군과 연합군 포로들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많은 고역을 치르고

전쟁후에는 전범으로 몰아져 재판을 받는등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내 나라를 잃은 국민이 일본의 죄를 뒤집어쓰고 전범으로 몰려 재판까지 받고 사형을 당하기도 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시면..

콰이강에 얽힌 한국군의 슬픈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