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강네 가족과 같이 다니기로 해놓구선.. 일찍 일어나 치앙마이 대학교로 갔다.

한참 치앙마이 대학교 돌아다니는데 전화 띠리리..

내 숙소로 오고있다고? ㅋㅋㅋㅋ

인강네가 하루 렌트한 썽태우를 타고 이곳저곳 편하게 구경다녔다.

치앙마이대학교는 국립.

얼마나 학교가 넓은지 정문 옆에는 학생들과 나같은 손님을 위한 코끼리자동차가 무료로 운행.

캠퍼스를 `15분 간격으로 도는 셔틀버스정도 얼마나 넓으면 이렇겠니?

치앙마이 대학교로 유학도 많이 온다고 헌다.

참.

이곳으로 영어연수오는 초중고생이 많다하더라.

학비는 싼편이 아니던데 기숙 국제학교에 한국 아이들이 많단다.

필리핀으로도 많이 가드만 필리핀보다는 비싼편이다.

이곳도 여지없다. 왕비생일 축하현수막..

도이수텝까지 갈려고 성테우 기다리는디 손님 10명 모일때까지 꼼짝도 안혀..

으흐..

도이수텝행 성태우는 빨간색으로 시내 정류장과 치앙마이대학교 입구의 정류장에서 출발을 한다.

정찰제 요금이나 사람이 적게모이면.. 1/n 형식으로 받는다.

해발 1,200m인 수텝산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놓은 사리탑이 있는 사원(왓 프라탓 도이수텝)이 산꼭대기에 있어

치앙마이의 상징물로 대표되고 있다.

“도이”는 산이란 뜻이며, “스텝”은 신선, 신령을 뜻한다.

한국어로 말하자면 “신선산(神仙山)” 되는데 그 이유는 옛날 이 산에 무수히 많은 신선들이 살아 산의 이름이 “도이수텝(신선산)”이 되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정확하게 왓 프라탓 도이수텝(Wat Phra That Doi Suthep) 사원이라고 불리우는데 그냥 간단히 도이 수텝이라고 한다.

도이수텝은 ‘부처의 사리를 모신 사원’이라는 의미로 란나왕조 시절 부처의 사리를 실은 흰 코끼리가 스스로 도이수텝 산마루까지 올라가

그 자리에서 울고 탑을 세 바퀴 돌더니 쓰러져 숨을 거두었는데 이를 신의 계시라 여기고 그 자리에 체디를 세워 사리를 모셨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약 12km거리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차량으로 올라가다 산정상의 산허리를 돌면 갑자기 눈앞에 큰 규모의 사원이 나타난다.

이 곳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사원까지 올라 전망대 쪽으로 가면 치앙마이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으며 계단을 통해 사원으로

올라가려면 용 2마리가 지키는 29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며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22m 높이의 체디 내부에 부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데 황금빛 탑 주변에는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전하는 말로는 본당을 둘러 싼 종을 한꺼번에 전부 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사원의 특징은 경내에 들어갈 때에는 어느 누구라도 신발을 벗어야 하며 어깨나 무릎이 보이는 복장으로는 경내에 들어갈 수 없다.

지금은 죽고 사진만 걸려 있는 닭이 있는데 이 닭이 살아 있을 때에 경내에 모르고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쫓아다니며 발을 쪼았다고 한다.

* 입장료는 30B(1000원)이며, 모노레일을 타는 경우 20B이 추가된다.(왕복 요금)

우리가 연등을 달듯 이니들은 종을 다는 것 같았다.

스님이 성수를 뿌리듯 대나무살에 묻혀 쫙 좍 뿌려주시더라.

도이수텝에서 다시 썽테우로 이동. 산자락 끝쯤 메오족 마을이 있다. 메오족은 몽족을 말한다.

수텝산에 왕실의 여름궁전 푸삥궁전을 지을때 수텝산자락에 흩어져 살던 몽족을 모아 그때까지 재배해왔던 아편재배에서

고랭지채소재배로 전환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마을이랜다. ? 푸핑 왕궁으로 지나는 도로 앞에서 데코보코의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5km 정도 가면 도이수텝산의 8부능선 계곡에 산악 민족인 몽족(메오족)이 살고 있는 도이푸이 Doi Pui에 도착한다.

80여가구에 800여명이 살고 있는 이마을은 치앙마이에서도 가장 가까운 산악 민족의 마을이어서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마을 안 중학교.

교실건물이 독채야..

v 치앙마이 태국인들은 몽족을 메오족이라고 부르는데 이말은 도둑이라는 의미란다.

그러니 몽족이라고 불러. 미얀마와 라오스 태국 북부 산악이 맞닿는 트라이앵글이 세계적인 양귀비 생산지로 악명을 떨치는데

크나큰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바로 몽족이었다. 옛날 중국의 운남 지방에서 이주해온 몽족들이 양귀비씨와 재배기술을 가져와

오늘날의 마약왕 쿤사의 기반을 잡아주었단다. 쿤사가 죽은 지금은 양귀비재배대신 다른 대체작물을 재배한다고 허는데

미얀마나 라오스에서는 그래도 재배하는것으로 알고있다.

민속촌 마을이기보다...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한 마을.

상점들은 사진 찍지 않았다.

옛날 골목이나. 닭들, 지붕들이 와닿더라